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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진흥왕 때 세운 신라의 성곽, 단양 적성과 단양 신라 적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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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적성 | 사적 제265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는 신라 시대에 만든 유명한 석비가 하나 있다. 오늘날 단양을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단양 신라 적성비’이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단양에서 춘천 방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인 단양 휴게소 바로 뒤에 있는 산 중턱에 있다.

 

 

우선 이 비석이 세워져 있는 사적 제265단양 적성(丹陽 赤城)에 대해서 알아보자.

단양 적성은 신라 진흥왕 때인 545년부터 551년 사이에 세워진 산성이다. 성곽의 둘레는 약 1킬로미터이지만 대부분 무너져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복원을 거쳐 옛 모습을 거의 찾은 상태이다.

성곽은 안쪽과 바깥쪽,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성곽이다.

 

 

예로부터 단양은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으로 둘러싸인 고장으로, 삼국 시대에는 한반도의 중앙부를 차지하려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지리적,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

 

 

백제, 고구려, 신라는 각각 한강 유역을 차지했던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고구려의 남하 정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백제가 이곳을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고구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흥왕 때에 이르러 비로소 신라가 이곳을 차지하여 삼국 통일의 토대를 마련했다.

 

신라 적성은 바로 그 진흥왕 시기에 지어진 성으로, 성 안에서는 신라와 삼국 시대의 토기, 기와 조각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성 안에서 단양 신라 적성비가 발견되었다.

 

 

 

▲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 | 비각 안에 보호되어 있다.​

 

 

 

국보 제198호에 지정되어 있는 단양 신라 적성비는 신라가 죽령, 즉 오늘날의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문경새재를 넘어 이곳을 차지하고 있던 고구려 세력을 물리치고 국경을 넓힌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의 존재가 밝혀진 때는 1978년이다. 산중턱에 있던 비석은 발견 당시에 비스듬히 누워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단국대학교 학술 조사단이 이 비석의 가치를 발견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 | 비각 안에 보호되어 있어서 멀리서밖에 볼 수 없다.

 

▲ 단양 적성 성곽

 

 

비석의 크기는 높이 93cm, 너비 107cm 정도이고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윗부분 일부가 잘려 나갔지만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 수는 약 440자인데 그중에 완전히 해석한 글자는 288자 정도이다. 신라가 영토를 확장할 때 도움을 주거나 공이 있는 사람에게 포상하고 훗날 신라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비석에는 진흥왕의 명령에 따라 신라의 국경을 개척하는 데 공을 세운 신하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에는 유명한 신라의 장군 이사부도 있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석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건립 연대가 545년에서 550년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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