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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 청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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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권사의 정문인 외삼문

 

 

서울시 지하철 2호선 방배역 사거리를 지나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지곤 한다.

 

"저 아름다운 한옥(문)은 뭐지?" 하고 말이다.

 

서울시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단청이 아름다운 문과 그 뒤로 이어진 초록색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4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있는 청권사이다.

 

청권사는 효령대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이름이지만, 편의상 묘소와 사당이 있는 이 묘역 전체를 가리켜 청권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권사 바로 앞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이 효령로가 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청권사는 '효령대군 이보 묘역'이라는 명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에 지정되어 있다.

 

 

▲ 청권사 | 효령대군 부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효령대군의 묘지 아래쪽에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본래 조선의 제3대 왕 태종(이방원)은 첫째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삼아 보위를 이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양녕대군의 행실이 기이하자 세자에서 폐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가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는 조선의 제4대 왕 세종 대왕이다.

 

 

청권(淸權)’이란 말은 옛날 중국 주나라 때의 태왕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 아들 우중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셋째 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태백과 우중이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머리를 깎고 은둔하며 왕위를 사양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훗날 공자(孔子)는 이 일을 떠올리며 태백을 지덕(至德)’, 우중을 청권(淸權)’이라고 칭송하였는데, 이 말을 본떠서 첫째인 양녕대군을 모신 사당을 지덕사, 둘째인 효령대군을 모신 사당을 청권사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지덕사는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음.)

 

 

 

▲ 효령대군 묘 | 왼쪽이 효령대군, 오른쪽이 부인의 묘이다.

 

 

 

 

청권사가 자리잡고 있는 서초구는 예로부터 서리풀이 무성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가리켜 상초리또는 서초리라고 불렀는데, 이 때문에 지금도 청권사가 있는 언덕 바로 뒤에는 서리풀 공원이 있고, 부근의 아파트나 도로명, 건물명 등의 여러 이름에도 서리풀이란 말이 붙어 있다.

 

서리풀을 한자로 하면 서초(瑞草)’인데 상초(霜草)’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는 쌀을 서화(瑞禾)’라고 하였는데, 옛날부터 이곳 서초구에서 나는 쌀을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여기서 서초는 상서로운 풀, 즉 벼를 뜻함을 알 수 있다.

 

서초구는 일제 강점기에는 경기도 과천에 속했으며,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금의 강남구, 서초구 일대는 그냥 배밭이어서 당시 한강의 남쪽에서 가장 번화했던 영등포의 동쪽 지역이란 뜻으로 주로 영동이라고 불렸다. 이 때문에 당시 강남에 있던 많은 학교와 건물, 지명에 영동이란 말이 붙여졌다(영동중학교, 영동고등학교, 영동대교 등등).

 

1970년대 말부터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강남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강남구가 탄생하였고, 1980년대에 비로소 강남구에서 분리되어 일부가 떨어져 나와 오늘날의 서초구가 되었다.

 

 

 

▲ 효령대군 묘에서 방배역 쪽을 바라본 모습

 

▲ 효령대군 묘 앞에는 문인상이 좌우로 2개씩 서 있다.

 

 

 

 

효령대군(1396~1486)은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원경왕후이며 본명은 이보(李補)이다. 형인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폐위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조 때인 1464년에 옛 흥복사 터에 원각사란 절을 짓게 되자, 그 공사를 주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장수하여 90세까지 살았다. 할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지 5년째 되는 1396년에 태어나 제9대 성종 17년인 148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무려 제1대 태조부터 제9대 성종 시대까지 살았던 것이다.

 

 

 

▲ 효령대군 기념관(사무국)

 

▲ 효령대군 신도비

 

▲ 모련재 | 쳥권사의 재실(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효령대군을 위한 사당인 청권사는 영조 때인 1737년 왕의 칙명으로 경기감영을 통해 묘소 아래에 지었으며, 정조 13년인 1789년에 청권사라고 쓰여진 사당의 현판을 하사받았다. 사당 뒤의 잘 다듬어진 언덕 맨 위에 효령대군과 그의 부인 예성부부인 해주 정씨(1394~1470)의 묘소가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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