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드 모네(1840~1926)
1. 인상파란?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19세기에 등장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 그 새로운 흐름 중에 우리가 흔히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라고 부르는 사조가 있다. 그렇다면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란 무엇을 말할까?
우리는 어떤 사물을 접하고서 강한 느낌을 받을 때 흔히 '인상적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인상(印象)이란, 이렇게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을 뜻한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19세기 후반에는' 인상주의' 또는 '인상파'라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났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그 당시까지 화가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을 ‘사실주의’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주의에 반대하며 일어난 것이 바로 인상주의이다.
인상주의에 속한 화가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인상주의 화가이다.’라고 규정짓지는 않는다. 후대 사람들이나 평론가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특징을 감지하여 공통점을 찾아 구분해 놓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상주의와 같은 사조는 그냥 화가 개인의 힘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영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런 시대적 상황에 화가가 영향을 받아 자신의 작품 속에 의도했든 아니든 그 특징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할 점, 인상주의의 특징은 무엇일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물을 보이는 모습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사물을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인상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 <인상, 일출>
2. 인상주의의 탄생
모네가 그린 위의 작품 <인상, 일출>은 서양 미술의 역사, 특히 인상파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840년 프랑스에서 가난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난 모네는 인상주의를 창시하고 꽃피운 화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상주의라는 말은 사실 모네의 작품인 <인상, 일출>에서 비롯되었다.
인상파, 인상주의라는 말은 살롱에서 낙선한 화가들의 ‘낙선 전람회’에 전시된 이 작품을 본 어느 기자가 ‘이것은 그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판한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바로 이때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겼다.
단조로운 색채, 사물의 부피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대충 그린 듯한 윤곽, 성의 없이 빠르게 채색한 듯한 거친 붓놀림 등 언뜻 보아서는 성의 없이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은 해돋이가 만들어 내는 풍경을 보고 난 후의 강렬한 인상을 담고 있다.
▲ <에트 강의 포플러나무>
▲ <수련>
모네는 일찍부터 빛에 따라서 사물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사람의 심리 상태, 시간, 날씨 등에 의해서도 크게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느 성당의 모습은 아침과 해지는 노을 무렵에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심리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모네의 독창성은 바로 이런 면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빛과 기후 조건을 달리하여 같은 소재를 가지고 되풀이하여 그리는 연작을 그리기도 하였다. 특히 수련을 소재로 하여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다.
3. 새로운 형식에 주목하다
▲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모네>
모네는 매우 진취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정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자포니즘’이다.
모네는 당시에 서양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동양에서 온 새로운 미술의 형식에 주목하였다. 그 새로운 형식이 바로 '자포니즘(Japonism)'이다.
자포니즘이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 양식을 뜻한다. 19세기 중반부터 서양 열강의 힘에 의해 강제로 개항하고 본격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일본은 자국의 문화를 서양에 널리 알리기 위해 만국 박람회를 이용하였다.
186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를 시작으로 일본은 여러 차례 만국 박람회에 참가하여 자국의 문화재와 상품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박람회에는 많은 일본의 도자기가 전시되었는데 유럽 사람들, 특히 예술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정작 도자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그 도자기를 포장했던 종이(포장지)였다.
그 포장지에 그려진 이국적인 그림은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일본 전통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였다. 우키요에는 주로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일본식 그림이다.
유럽의 예술가들, 특히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한마디로 우키요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 후로 유럽의 회화 양식 중에는 유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날의 한류처럼 일종의 신드롬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서양 미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서양 미술사>라는 책을 쓴 에른스트 곰브리치도 아래와 같이 자포니즘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19세기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도와주었던
두 동맹자(사진, 일본 채색 판화)가 없었다면
인상주의의 승리는 그토록 빠르고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은 화가로는 대표적으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가 있다. 그들은 서양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식의 일본 회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였다. 모네도 자포니즘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림뿐만 아니라 정원의 조경과 집안의 장식 등에도 일본풍의 양식을 적용시켰다.
위의 작품인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모네>에서 모네는 아내인 카미유에게 아예 기모노를 입히고 그림을 그렸다.
현재 지베르니에 남아 있는 모네의 저택에는 일본풍의 정원이 남아 있고, 그의 집안에 만들어 놓은 모네 박물관에는 모네가 생전에 수집했던 우키요에 작품이 무려 250점이나 보관되어 있을 정도이다.
▲ <양산을 든 여인>
모네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순간적인 효과’를 인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르누아르, 마네, 드가 등과 함께 19세기에 가장 큰 미술 혁신운동, 즉 인상주의를 이끌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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