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76) 썸네일형 리스트형 여주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사찰, 여주 신륵사 ▲ 여주 신륵사 | 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우왕 때 나옹 선사가 돌아가신 곳으로 유명하며 조선 시대에는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이 여주로 이장되면서 원찰이 되어 '보은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이 갈라지는 양평을 지나 남한강을 따라 가다 보면 경기도 여주시가 나온다. 서울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이 고장은 ‘여강(驪江)이 흐르는 고장’이라고 하여 여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강은 남한강의 옛 이름이다. 옛날부터 경기도 여주는 넓고 비옥한 땅에서 나는 질 좋은 쌀로 유명한 고장이다. 뿐만 아니라 흙이 기름지고 찰기가 있어서 궁궐에서 사용하는 그릇도 이곳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에는 도자기가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 남한강변에 인접해 있는 정자 강월헌 .. 나라의 급한 소식을 주고받던, 목멱산 봉수대 터 ▲ 목멱산 봉수대 터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봉화(烽火)를 영어로는 ‘Signal Fire’라고 한다. 불로 보내는 신호라는 뜻인데,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이렇게 불을 피워서 신호를 보내곤 하였다. 특히 나라에 큰 변란이 있거나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먼 곳에 빠르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봉화와 파발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봉화는 나라의 국경이나 변방의 급한 소식을 한양 도성으로 빨리 전달하고, 상황이 발생한 지역의 백성들에게도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 수단이었다. 아무래도 말을 타고 문서를 직접 전하는 파발보다는 봉화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봉화를 전하기 위해서 세운 시설을 ‘봉수대’라고 한다. 봉수대는 멀리서도 불과 연기가 잘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부.. 고려 시대의 석탑,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 국보 제100호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우뚝 솟아 있는 남계원지 칠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만든 석탑으로, 국보 제100호에 지정되어 있다. 탑의 높이만 해도 약 7.5미터에 이르며 위풍당당함을 지닌 이 탑은 본래 지금의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성시 덕암동에 있던 ‘남계원’이라는 사찰 터에 세워져 있던 탑이다. 본래 개성의 남계원 터에 있던 탑이므로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그 이름처럼 7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도 일부 지니고 있으나 전반적인 탑의 양식은 전형적인 고려 시대의 것이며,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남계원 터에서 경복궁으로.. 조선 시대의 석비, 금암기적비 ▲ 금암기적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8호 금암기적비(黔巖紀蹟碑)는 조선 시대인 1781년(정조 5년)에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을 세운 사람은 22대 임금인 정조이다. 그는 19대 왕 숙종의 묘인 명릉을 참배하고 궁궐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할아버지인 영조에 관한 일을 떠올리며 이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숙종은 영조의 아버지이므로 정조에게는 증조할아버지이다. 숙종의 묘인 명릉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 안에 있다. 이 비석이 세워진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비석의 이름인 ‘금암기적비’에서 ‘금암’은 ‘검암(黔巖)’에서 비롯된 말이다. 검암은 '검은 바위'란 뜻인데, 지금의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옛날에 검은색의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 조선 말기의 전통 가옥,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 ▲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 | 등록문화재 제40호 서울시 강북구에는 ‘북서울 꿈의 숲’이라는 이름의 대형 녹지 공원이 있다. 옛날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이곳에 '드림랜드'라는 강북 지역 최대의 놀이 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재정난 탓인지 관리와 시설 투자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있다가 서울시에서 지난 2009년에 오늘날과 같이 '북서울 꿈의 숲'이란 이름의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공원은 현재 서울에서 네 번째로 큰 공원이라고 하는데, 공원 안에는 조선 시대에 지어진 전통 가옥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바로 등록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이다. 이 집은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1818~1832)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1819~1853)를 위한.. 조선 시대의 관청 건물, 삼군부 총무당 ▲ 삼군부 총무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에 있는 한성대학교 바로 옆 ‘삼선상상어린이공원’에는 조선 시대의 커다란 관청 건물이 하나 남아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삼군부 총무당(三軍府 總武堂)’이다. 우선 ‘삼군부(三軍府)’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삼군부는 조선 왕조를 건국하면서부터 있던 기관으로, 군사와 국방을 담당하는 최고 기관이었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의 '국방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3군이란 이름은 중군, 좌군, 우군을 합쳐서 생겼는데, 훗날 군사 제도가 5위(五衛) 체제로 바뀌면서 삼군부는 없어졌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조선 말기인 1865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삼군부를 조직하면서 현재의 삼군부 건물이 세워졌다. 이때 삼군부는 전국의 군사 조직.. 서울의 북쪽을 방어하던, 북한산성 ▲ 북한산성 | 사적 제162호 서울의 북쪽과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북한산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 중 하나이다. 국립공원이기도 하며 일 년 내내 등산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북한산은 지세가 험하고 높은 봉우리를 여럿 끼고 있다. 특히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라는 세 개의 큰 봉우리가 돋보여서 옛날부터 ‘삼각산(三角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예로부터 도성의 경계를 이루는 내사산(內四山; 북악산, 낙산, 인왕산, 남산)과 도성을 외곽에서 한 번 더 감싸는 외사산(外四山)에 둘러싸인 한양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이자 풍수지리상 길지에 속한다고 여겨졌다. 여기서 외사산은 북쪽의 북한산(삼각산), 동쪽의 용마산, 서쪽의 덕양산, 남쪽의 관악산을 가리킨다. 외사..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집, 비우당과 자주동샘 ▲ 비우당 | 을 쓴 이수광이 살던 집으로,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은 내사산((內四山,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이어서 쌓은 성곽이다. 그중에서 흥인지문(동대문)에서 북소문인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낙산은 내사산 중에서 가장 완만하고 높이가 낮은 산으로, 풍수상으로는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된다. 옛날에는 산의 모습이 마치 낙타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낙타산’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여기서 오늘날의 낙산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현재 낙산에는 ‘낙산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경사가 완만하여 다른 성곽 코스에 비하여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고 특히 밤에는 한양도성 성벽과 어우러진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비우당 | 서울 명신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데,..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