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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조각의 아버지, 로댕 1. 을 조각하다 ▲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은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을 떠올리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바로 이 을 만든 로댕은 ‘근대 조각의 시조(始祖)’로 여겨지는 위대한 조각가이다. 1840년, 프랑스 파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댕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 학교의 입학시험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후, 석고를 뜨거나 건축물을 조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그의 삶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로댕은 35살 무렵에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이탈리아 여행(..
자주독립의 상징, 독립문 ▲ 독립문(사적 제32호) 19세기 말, 일본과 러시아, 청나라 등 밀려오는 외세의 간섭으로 조선의 운명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서재필을 중심으로 설립된 독립협회는 민중을 계몽시키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자주독립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다. 서재필(1864~1951)은 1884년 김옥균과 서광범, 홍영식, 박영효 등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3일 천하’로 정변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학업에 전념하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했으며, 미국 시민권까지 취득하기도 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나 역적이라는 죄명이 벗겨지자, 그는 1895년 말에 귀국하여 독립협회를 결정하고 을 창간하기도 했..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청령포와 장릉 1. 강원도 영월에 유배된 어린 왕 ▲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지금도 배를 이용해야만 오고갈 수 있다. ▲ 단종이 청령포에서 머물렀던 집 ▲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돌로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망향탑 장릉은 조선의 제6대 왕인 단종(1441~1457)의 무덤으로, 현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다. 다른 조선 왕들의 무덤은 모두 서울이나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에 남아 있다. 그런데 단종의 무덤만은 서울에서도 너무나 멀리 떨어진 강원도에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종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불운한 왕이다(재위 1452~1455). 8살이 되던 해에 왕세손으로 책봉된 단종은 할아버지인 세종대왕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세종 대왕은 어린 손자가 걱..
동북 9성을 축조한, 파주 윤관 장군 묘 1. 동북 9성을 쌓은 고려 전기의 장군 ▲ 파주 윤관 장군 묘 | 사적 제323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는 고려 시대의 명장인 윤관 장군의 묘가 있다. 고려 시대의 거대 불상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 제93호)’에서 북쪽으로 약 2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윤관 장군묘는 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윤관(尹瓘)은 고려의 개국 공신이었던 윤신달(893~973)의 후손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윤관 장군묘가 있는 파주시의 옛 지명이 바로 ‘파평(坡平)’이다. 그리고 파평 윤씨의 시조는 윤신달이며 윤관 장군이 중시조이다. 여기서 잠깐 파평 윤씨 가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워낙 유명한 가문이기 때문에) 이 가문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여럿 배출되었다. 윤관 장군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마을, 안동 하회마을 1. 마을을 감싸 안으며 흐르는 낙동강 줄기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 마을 전경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 마을인 안동 하회 마을이 있다. 이곳은 무려 600년 이상 풍산 류씨가 대대로 살아온 마을로, 현재도 약 150여 호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은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S자 모양으로 감싸 돌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하회 마을에 들어가 오른쪽 강변을 따라 가면 나루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면 부용대라는 절벽이 있다. 이 절벽 위에서 바라보면 하회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감싸 안으며 흐르는 강물과 기와집, 초가집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과 같은 광경을 만들어 낸다. ▲ 옥연정사 | 류성룡이 을 쓴 곳이다. 2...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서울 문묘와 성균관 1. 같은 곳에 있는 문묘와 성균관 ▲ 문묘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 | 공자와 여러 성인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문묘란 무엇일까? 문묘는 유교를 창시한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말한다. 문묘(文廟)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가 아닌 사당을 가리키는 '묘(廟)'이다. 중국에서는 공자를 가리켜 문(文)을 대표하는 성인이란 뜻으로 '문성인(文圣人)', 관우를 가리켜 무(武)의 성인이란 뜻으로 '무성인(武圣人)'이라고 부르는데, 따라서 공자의 사당을 문묘, 관우의 사당을 무묘라고 부른다. (현재도 서울 동묘에 남아 있는 동관왕묘가 바로 무묘이다.) ▲ 대성전 편액 | 조선 초기의 명필로 이름 높은 한호(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객사, 전주객사 ▲ 전주객사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3가 1번지에 있으며, 보물에 지정되어 있다. 1. ‘객사(客舍)’란 무엇일까 본래 ‘객사’란 나그네나 여행객이 묵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객사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보통 나그네가 아니라 외국의 사신이나 왕의 명령을 받아 중앙에서 파견된 벼슬아치가 머무르는 곳을 뜻한다. 마치 오늘날 지방 곳곳에 도청이나 시청, 또는 구청과 같은 관공서가 있듯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각 지방을 다스리기 위한 행정의 중심 관청인 관아가 지방의 중심지 곳곳에 있었다. 관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바로 객사와 동헌이다. 동헌은 관아의 우두머리인 수령의 집무실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동헌은 객사의 동쪽에 지었기 때문에 ‘동헌(東軒)..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 부석사 전경 ▲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1. 영주 부석사의 역사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절이다. 부석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 때에 의상 대사(625~702)가 세운 절인데,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와 우리나라의 화엄종을 창시한 유명한 승려이다. 부석사의 이름에 들어 있는‘부석(浮石)’이란 말은 공중에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뜬돌'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이라는 아주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에 있는 바위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의상 대사가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선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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