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76)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의 궁궐, 창경궁 1. 주로 왕실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창경궁 ▲ 동궐도 | 1824~1828년 무렵에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으로, 전각의 위치와 모양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잘 나타나 있다.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 즉 오늘날의 서울에는 조선 시대의 궁궐 다섯 곳이 남아 있다. 조선 왕조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옛날에 동궐이라고 불렸던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서궐이라고 불렸던 경희궁, 마지막으로 덕수궁이다. 오늘날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 창경궁은 본래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 14년(1483년)에 당시 살아 계셨던 세 분의 대비(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추존)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하여 옛 *수강궁 터, 즉 창덕궁의 동쪽에 지.. 충무공 이순신의 무덤, 아산 이충무공 묘 ▲ 아산 이충무공 묘 (사적 제112호) 1. 성웅 이순신이 잠든 곳 사적 제112호에 지정되어 있는 ‘아산 이충무공 묘’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임진왜란의 영웅,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바로 그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이 묻힌 곳이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무덤이 아산 현충사에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현충사 안에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과 장군이 살았던 집이 있지만, 실제 그가 묻힌 무덤은 현충사로부터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고 무덤은 따로 있다. 여기서 잠깐 사당과 무덤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조선 왕조는 유교를 국가 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삼은 국가였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은 무.. 순국선열의 넋을 모신, 효창공원 1. 효창공원의 간략한 역사 ▲ 효창공원 입구 | 사적 제330호이다.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 입구역과 숙명여대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러 순국열사의 묘가 모여 있다. 효창공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효창원(孝昌園)'이 있었던 자리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효창원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1782~1786)의 무덤이다. 정조의 장남으로 태어난 문효세자는 두 살 때에 바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불과 5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본래 효창공원은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었던 자리였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 효창원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강제로 이장되었고, 공원이 조성되었다. 현재 효창공원은 도심 속의 공원.. 백제의 마지막 도성, 부여 부소산성 ▲ 부소산문 | 부소산성의 정문이다. 부소산성은 사적 제5호에 지정되어 있다. 1. 백제의 도성이었던 부소산성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 충청남도에 위치한 부여는 시가 아닌 군이다. 서쪽으로는 보령시, 동쪽으로는 논산시, 북쪽으로 공주시,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와 맞닿아 있다. 시외버스를 타고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의 도심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북쪽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는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백마강과 맞닿아 있는 이 산의 이름은 부소산으로, 부소산에는 백제의 산성이자 부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부소산성이 있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도읍인 사비를 감싸고 있던 도성(都城)으로, 에는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산의.. 근대 건축물,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 회관과 도정궁 경원당 1. 건국대학교의 상징, 구 서북학회 회관(건국대학교 박물관) ▲ 구 서북학회 회관(등록문화재 제53호) |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교 캠퍼스 안의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 이번에는 건국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건국대학교 안에는 2개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먼저 찾아간 곳은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舊) 서북학회 회관’이다. 건국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학교의 명물인 '일감호'라는 큰 호수가 있다. 일감호 옆에는 호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학생회관과 청심대라는 쉼터가 있는데, 청심대에서 가까운 곳에 붉은색 벽돌로 된 2층짜리 건물이 바로 등록문화재 제53호에 지정되어 있는 구 서북학회 회관이다. ▲ 1947년 조선정치학관.. 조선 시대의 다리, 살곶이다리(전곶교) 1. '살곶이'라는 이름의 유래 ▲ 살곶이다리(전곶교) | 조선 시대의 다리로, 보물 제1738호에 지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살곶이다리’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보셨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한양대학교 바로 옆을 흐르는 중랑천에 있는 다리,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이 지점에 놓여 있는 다리가 바로 살곶이다리이다. 한자로는 '전곶교(箭串橋)'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도읍인 한양 도성에서 동쪽과 남쪽 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흥인지문이나 광희문 쪽으로 나와서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살곶이다리는 또한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다. 살곶이는 ‘살꽂이’가 바뀐 말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멀리서 바라본 살곶이다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물 아래.. '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집, 용흥궁 1. 잠저, 용이 살았던 집 ▲ 용흥궁 전경(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 용흥궁 현판 여러분은 혹시 ‘강화도령’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강화도령이란 왕위에 오르기 전 강화도에 살았던 도령, 즉 조선의 제25대 왕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조선의 역사에서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만큼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철종만큼 불행한 왕도 없을 것이다. 그는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올라, 비록 왕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비운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용흥궁은 철종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어 1849년 1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 근대 건축물, 이화여자대학교 파이퍼홀(본관) 1. 이화여대의 간략한 역사 ▲ 이화여자대학교 본관(파이퍼홀) | 등록문화재 제14호 대학교 캠퍼스 안의 근대 건축물을 찾아서, 이번에는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우선 이화여자대학교, 약칭 ‘이화여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명문 여자 대학교로 평가받는 이화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학교이기도 하다. 이화여대의 역사는 조선 말기인 1886년에 미국의 북감리교 선교사이면서 해외여성선교회를 통해 조선으로 파견된 메리 스크랜튼(M. F. Scranton, 1832~1909) 여사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던 자택에서 한 여학생을 교육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듬해인 1887년에 고종 황제가 직접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함으.. 이전 1 ··· 42 43 44 45 46 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