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76) 썸네일형 리스트형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크루아 ▲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자화상 ▲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을 배경으로 그린 은 들라크루아의 대표작이자 프랑스 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들라크루아는 자유를 위해 일어선 시민들과 이들을 이끄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숭고(崇高)한 혁명의 정신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1789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대혁명은 세계사(世界史)를 뒤흔든 중요한 사건이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자유와 저항, 시민 정신이 19세기 내내 유럽 전체를 지배하였고, 계속하여 이어졌던 1830년의 7월 혁명, 1848년의 2월 혁명, 그리고 파리 코뮌까지 혁명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모든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새롭게 일어난 예술의 흐름이 '낭만주의'였다. 낭만주.. 무희(舞姬)의 화가, 드가 ▲ 에드가 드가(1834~1917)의 자화상 드가는 흔히 ‘무희(舞姬)의 화가’, 또는 '무용의 화가'로 불린다. 무희는 여자 무용수를 가리키는 말로, 드가의 작품 가운데에는 유독 발레 무용수와 발레를 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경마장에서 달리는 경주마와 기수들의 모습도 많이 그렸으며, 생전에는 특히 사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데생(소묘)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1834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드가는 처음에는 법률을 공부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신고전주의 화가인 앵그로(1780~1867)를 만나 그에게서 데생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드가는 미술 학교에 들어갔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거장들..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 ▲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자화상 서양 미술사에서 독일 출신의 위대한 화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첫 번째로 꼽힐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일 것이다. 그는 치밀한 구도와 날카로운 묘사로 독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뒤러는 이미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뛰어난 자화상을 그릴 정도로 회화에 재능이 있었으며, 아버지의 소개로 볼게무트라는 유명한 화가의 공방에서 3년을 지냈다. 그리고 한동안 여행을 다녔는데 네덜란드,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갔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그는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르네상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시작하였다. 1505년에 그는 다시 두 번째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 베네치.. 르네상스가 낳은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음악의 모차르트, 문학의 괴테, 수학의 가우스, 과학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각 분야에 걸쳐 ‘천재’라고 불렸던 위대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잘 살려 인류사에 큰 발자취나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모든 분야에 걸쳐 탁월한 실력을 보였던 천재는 없었다. 단순히 위대한 화가로 부르기에는 그의 재능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그는 한마디로 ‘천재 중의 천재’였다. 1452년 이탈리아의 빈치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로도 다빈치는 15살 때부터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자였던 베로키오(1435~1488)의 제자가 되어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미..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자크 루이 다비드 ▲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자화상 17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혁명(프랑스 대혁명)은 왕과 귀족 중심의 사회를 시민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시켰고 유럽 전체, 나아가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엄청난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정치, 사회, 문화 등 인류의 모든 양식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자연스레 예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이전까지와는 다른 형식의 예술이 생겨날 수 있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19세기가 시작되자, 예술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형식이 나타났는데, 신고전주의는 이전까지의 귀족 중심의 우아한 미술 양식에서 벗어나 옛것에 관심을 가지자는 움직임이었다. 신고전주의 작품의.. 해바라기를 닮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자화상들 서양 미술사에서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 중 하나이다. 아마도 그의 처절하도록 불행한 삶과 그가 남긴 강렬한 작품이 대조되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가 화가로서 작품 활동에 전념한 시간은 사실 그리 길지 않다.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오르다 사그라든 삶처럼 그는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걸작을 남겼다. 강한 색채와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보여 주는 그의 작품들은 현대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고, 오늘날까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고흐가 살아 있을 때에 그의 작품들은 사람들로부터 전혀 인정을 받지 .. 타히티 섬의 화가, 고갱 ▲ 폴 고갱(1848~1903)의 자화상 19세기 서양 미술의 큰 흐름이었던 인상파는 이전 세대의 전통적인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었다.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작품인 라는 작품에서 비롯된 인상파는 미술은 물론이고 음악과 문학 등 다른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회화에서는 빛의 변화에 따른 사물의 변화된 인상, 시각적 착시 효과를 이용한 색채 분할, 전통적인 사실적 묘사와 기교에서 벗어난 다양한 기법 등이 인상파의 특징으로 꼽힌다. 이러한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여러 화가가 등장하였지만 이와 반대로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는 움직임 또한 생겨났다. 우리는 이것을 ‘후기 인상주의’, 또는 ‘탈인상주의’라고도 부른다. 영어로는 Post-Impressioni.. 세종대왕의 무덤, 영릉(세종대왕릉) ▲ 영릉 | 조선 왕릉 최초의 합장릉으로 봉분(능침)이 하나이고, 앞에 혼유석은 두 개이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위치한 영릉(英陵)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꼽히는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과 그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이다. 사적 제195호에 지정되어 있다.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 근처에는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영릉(寧陵)이 있는데, 이 능은 북벌을 추진하였던 제17대 임금 효종과 그의 비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두 왕릉은 불과 약 700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래서 흔히 이 두 왕릉을 합쳐서 ‘영녕릉(英寧陵)’이라고 부르고 여주에서 영녕릉을 찾으면 두 왕릉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영릉이라는 이름의 왕릉이 하나 더 있다. 영조의 큰아들인 효장세자의 무덤도 영릉(永陵)인.. 이전 1 ··· 34 35 36 37 38 39 40 ··· 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