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76) 썸네일형 리스트형 대한제국 최고의 의료 기관, 대한의원 ▲ 대한의원 본관 (사적 제248호) | 대한제국의 최고 의료기관이자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의 전신이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안에는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은, 붉은 벽돌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근대 서양식 건물 하나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인접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의학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대한제국 최고의 국립 의료 기관이었던 ‘대한의원’의 본관 건물이다. 일찍이 이 일대는 창경궁의 후원이었던 함춘원이 있던 자리이다. 함춘원은 현재의 위치인 창경궁의 동쪽에 있었는데 정조 때에는 이곳을 정비하여 경모궁으로 불렀다. (사적 제237호 경모궁지) 대한의원은 1907년에 ..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여 만든, 강화산성 ▲ 강화산성 남문 | 강화산성 내성의 남쪽 문이며, 조선 시대 숙종 37년(1711년)에 지어졌다. 앞쪽에는 ‘강화남문’, 뒤쪽에는 ‘안파루’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강화산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132호에 지정되어 있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고려 시대인 1232년(고종 19년), 무신 정권의 실권을 쥐고 있던 최우(최충헌의 아들)는 몽골의 침입을 맞아 개경에 있던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골에 끝까지 저항하고자 하였다. 육지에서는 천하무적이지만 수전(水戰)에 약한 몽골군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이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어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무려 39년 동안이나 몽골에 항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 충절을 지킨 충신의 묘, 사육신 묘 ▲ 의절사 |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각종 공무원 시험 학원과 고시 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에 대한 충절을 죽음으로써 지킨 사육신의 묘가 있다. 사육신 묘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은 세조 2년인 1456년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여섯 신하를 가리킨다. 오늘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린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숙부(수양대군,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다시 본래의 임금을 세우고자 한 사육신을 ‘충신’의 대명사로 여기며 추앙하는 ..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 석비, 충주 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 ▲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내부 ▲ 충주 고구려비 앞면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 마을에 있는 충주 고구려비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의 돌비석으로, 국보 제205호에 지정되어 있다. 충주 고구려비는 오랫동안 ‘중원 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에 아직도 이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비석은 5세기 무렵 고구려 장수왕과 남진 정책과 당시 삼국의 관계, 세력 범위 등을 밝혀 주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적극적인 남진 정책으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였던 고구려의 세력 범위가 충주 지역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 충.. 조선 시대 서울의 아침과 저녁을 알리던, 보신각 ▲ 조선 말기의 보신각 ▲ 오늘날의 보신각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에 위치한 보신각은 본래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한가운데에 있던 종을 달아 두던 전각이다. 이 일대에 남아 있는 종각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 보신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종로(鐘路)’라는 이 일대의 지명도 종각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직후인 1398년에 처음으로 한양 도성 안에 종을 매달아 두는 종루가 현재의 인사동 입구인 청운교 부근에 생겼다. 당시 종루는 2층의 누각 건물이었는데, 인정과 파루에 각각 종을 울려서 도성의 문을 닫고 열었다. 지금으로 치면 저녁 10시 무렵인 인정(人定)에는 28번을 종을 울리고, 새벽 4시 무렵인 파루(罷漏)에는 33번을 종을 울려서 시각을 알렸던 것이다. 인정과 .. 백제의 왕성으로 여겨지는, 풍납토성 ▲ 풍납토성 | 지하철 천호역 10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긴 언덕 같은 성벽이 보인다.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일대에 있는 풍납토성은 말 그대로 흙을 다져서 쌓은 성곽으로, 한강 유역에 있는 백제 초기의 성곽이다. 백제의 유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토성으로, 사적 제11호에 지정되어 있다. 평지에 흙을 다져 쌓은 성벽은 그 전체 길이가 본래 4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25년에 일어난 대홍수 때문에 서쪽 성벽이 없어져서 현재는 2.2킬로미터 정도가 남아 있다. 성벽은 한강변까지 뻗어 있고 나머지 방향으로도 성벽이 일부 끊기면서도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약 6~11미터로 평지에 지은 성벽으로는 엄청나게 높은 편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토성이 아니라 야트막한.. 고려 시대의 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1호) 국보 제48-1호에 지정되어 있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기슭에 있는 월정사라는 절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오대산은 설악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간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예로부터 불교의 성지로 꼽혀왔고 특히 문수보살이 거처하는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오대산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으로 유명한데 특히 월정사에서 상원사와 적멸보궁으로 이어진 계곡에는 수백 년 된 전나무와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월정사는 오대산 입구에 있는 절로, 에 따르면 신라의 고승인 자장(590년경~658년경)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이곳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고 여겨서 월정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때가 신라 선..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를 만든, 흥덕사지 ▲ 청주 흥덕사지(사적 제315호) 충청북도 청주시에 남아 있는 흥덕사지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로, 사적 제315호에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를 찍은 곳이다. 1985년에 흥덕사 터를 발굴할 당시에 건물터와 주춧돌만 남아 있던 이곳에서 ‘흥덕사’라고 새겨진 쇠북(금구) 조각이 출토되어서 절의 이름이 흥덕사였음이 밝혀졌다. ▲ 직지심체요절(=직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흔히 직지라고 부르는 이 책은 불교 서적으로 고려 시대인 1377년에 이곳 흥덕사에서 인쇄되었는데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보다 약 70여 년이나 앞선 것으로,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인.. 이전 1 ··· 31 32 33 34 35 36 37 ··· 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