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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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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서울 문묘와 성균관 1. 같은 곳에 있는 문묘와 성균관 ▲ 문묘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 | 공자와 여러 성인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문묘란 무엇일까? 문묘는 유교를 창시한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말한다. 문묘(文廟)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무덤을 가리키는 '묘(墓)'가 아닌 사당을 가리키는 '묘(廟)'이다. 중국에서는 공자를 가리켜 문(文)을 대표하는 성인이란 뜻으로 '문성인(文圣人)', 관우를 가리켜 무(武)의 성인이란 뜻으로 '무성인(武圣人)'이라고 부르는데, 따라서 공자의 사당을 문묘, 관우의 사당을 무묘라고 부른다. (현재도 서울 동묘에 남아 있는 동관왕묘가 바로 무묘이다.) ▲ 대성전 편액 | 조선 초기의 명필로 이름 높은 한호(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객사, 전주객사 ▲ 전주객사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3가 1번지에 있으며, 보물에 지정되어 있다. 1. ‘객사(客舍)’란 무엇일까 본래 ‘객사’란 나그네나 여행객이 묵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객사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보통 나그네가 아니라 외국의 사신이나 왕의 명령을 받아 중앙에서 파견된 벼슬아치가 머무르는 곳을 뜻한다. 마치 오늘날 지방 곳곳에 도청이나 시청, 또는 구청과 같은 관공서가 있듯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각 지방을 다스리기 위한 행정의 중심 관청인 관아가 지방의 중심지 곳곳에 있었다. 관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바로 객사와 동헌이다. 동헌은 관아의 우두머리인 수령의 집무실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동헌은 객사의 동쪽에 지었기 때문에 ‘동헌(東軒)..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 부석사 전경 ▲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1. 영주 부석사의 역사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절이다. 부석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 때에 의상 대사(625~702)가 세운 절인데,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와 우리나라의 화엄종을 창시한 유명한 승려이다. 부석사의 이름에 들어 있는‘부석(浮石)’이란 말은 공중에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뜬돌'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이라는 아주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에 있는 바위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의상 대사가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선묘라..
신사임당과 율곡의 생가, 강릉 오죽헌 ▲ 오죽헌의 전경 ▲ 오죽헌의 정문인 자경문 ▲ 오죽헌(몽룡실) | 가운데에는 오죽헌이란 편액이, 오른쪽 방에는 몽룡실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1. 신사임당과 율곡의 고향 강원도 강릉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오죽헌은 조선 시대의 여류 예술가인 신사임당(1504~1551)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집이다. 신사임당과 이이는 각각 우리나라 화폐 5만원 권과 5천원 권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손꼽힌다. 신사임당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류 예술가로, 그의 아들인 이이는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의 성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로 평가받는다. 오죽헌이 처음 지어진 때는 조선 초기인 1450년 무렵이며, 현재 보물에 지정되어 있다. 또한 오죽헌은 우리나라에..
서울에 있는 관우의 사당, 서울 동관왕묘 1. 무(武)의 신, 관우 ▲ 동묘 현판 혹시 여러분은 나관중의 소설 에 나오는 '관우'라는 인물을 알고 있는가? 유비, 장비와 함께 도원결의를 맺고 죽을 때까지 촉나라와 유비를 위해 용감하게 싸웠던 관우(?~219)는 중국의 삼국 시대인 후한 말기, 우리가 흔히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배웠던 바로 그 시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 속 인물이다. ▲ 하마비 | 이곳은 신성한 곳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 금잡인비 |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 정전 | 동묘의 중심 건물로, 관우의 조각상을 모시고 있다. 소설 가 비록 정사(正史)는 아니지만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 아니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관우라는 인물이 누구보다 용맹스럽고 충성심이 강한 장군이었다는 정도는 쉽게 알 수..
정조의 능행차를 위해 만든 다리, 만안교 1. 조선 시대에 만든 아름다운 돌다리 ​▲ 만안교 | 경기유형문화재 제38호에 지정되어 있다.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천 지류에 있는 만안교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가 아버지의 무덤인 수원 화산의 현륭원으로 가는 행차를 위해 세운 다리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본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경기도 양주 배봉산(현재 서울시 동대문구)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화산(현재 경기도 화성시)으로 옮기고 자주 참배에 나섰으니 이를 가리켜 ‘화산 능행차’라고 한다. 사도세자의 묘는 처음에 오늘날 서울시립대학교 뒤편에 있는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었다. 이때는 ‘영우원(永祐園)’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풍수지리상으로 이곳이 좋지 않다고 하여 정조는 당시 조선 최..
근대 건축물, 서울 중앙고등학교 1. 아름다운 학교 건축물 ▲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 사적 제281호에 지정되어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나들이 나온 서울 시민들의 발길로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는 갖가지 앙증맞고 특색 있는 카페와 상점, 작은 박물관, 그리고 한옥들이 골목골목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있다. 바로 이 북촌 한옥마을의 북쪽 끝에 서울 중앙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웬만한 대학교 캠퍼스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학교 안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만 무려 3개나 있다. 오래 전 한류 드라마의 원조로 꼽히는 의 배경으로도 등장한 탓에 ‘한류 관광의 필수 코스’로도 꼽혔고, 몇 년 전에는 걸그룹 ‘여자친구’가 부른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이..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 청권사 ▲ 청권사의 정문인 외삼문 ​ 서울시 지하철 2호선 방배역 사거리를 지나가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지곤 한다. "저 아름다운 한옥(문)은 뭐지?" 하고 말이다. 서울시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단청이 아름다운 문과 그 뒤로 이어진 초록색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제4대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있는 청권사이다. 청권사는 효령대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이름이지만, 편의상 묘소와 사당이 있는 이 묘역 전체를 가리켜 청권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권사 바로 앞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이 ‘효령로’가 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청권사는 '효령대군 이보 묘역'이라는 명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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