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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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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있는 고려의 궁궐터, 강화 고려궁지 ▲ 강화 고려궁지 입구(승평문) ▲ 강화 고려궁지 전경 | 사적 제133호에 지정되어 있다. ​ 강화 고려궁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시대의 궁궐터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본래 고려의 도읍은 오랫동안 개경(개성)이었다. 그런데 강화도에도 고려의 궁궐이 남아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몽골의 침략 때문이다. 13세기 초 칭기즈 칸(1162~1227)이 세운 몽골은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대제국이었다. 칭기즈 칸은 중앙아시아의 초원에 흩어져 살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몽골 제국을 세우고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 대륙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고 차지하였다. 중국 대륙을 차지하고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몽골군이 마침내 1232년에 고려를 침략하였다...
강화도를 지켰던 군사 시설, 초지진 1. 조선 시대의 군사 요새 ▲ 초지진 성벽 ▲ 초지진 입구 사적 제225호에 지정되어 있는 초지진은 강화도에 있는 조선 시대의 군사 요새이다. 옛날부터 강화도는 바다를 통해 한강을 따라 서울(한양)로 침입하는 적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강화도 곳곳에 군사 요새가 세워졌다. 초지진이 처음 세워진 때는 효종 때인 1656년이다. 그후 숙종 때인 1679년에 성곽으로 개보수되었다. 초지진은 강화 12진보 중 하나이다. 조선 후기에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하여 5개의 진(鎭)과 7개의 보(堡)가 설치되었는데 이를 합하여 흔히 강화 12진보라고 한다. 각각의 진이나 보마다 수 개의 돈대도 설치되었다. 여기서 돈대란 평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세우는 군사시설로 적군의 움직임을 감..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이 불상은 백제 말기인 7세기 무렵에 만든 것으로, 그 신비스러운 미소 때문에 흔히 ‘백제의 미소’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백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이 불상이 있는 서산시 운산면은 당시 백제의 수도인 부여에서 태안반도를 거쳐 뱃길을 통해 중국으로 향하는 옛 백제의 교통로이다. 또한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중국 남북조 시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당시 백제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보통 불상이라고 하면 사찰 대웅전에 있는 금빛의 불상을 떠올리는데, 사찰에 있는 조각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의 암벽에 불상을 새긴 것을 ‘마애불’이라고 한다. 마애불은 기원전부터 인도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주로 석굴사원에 많이 있다...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재, 풍남문 ▲ 풍남문 | 옛 전주읍성의 남쪽 대문으로, 보물 제308호에 지정되어 있다. ​ ​ 1.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전주 현재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는 예로부터 전라도의 중심지였다. 전라도라는 이름 자체가 전주와 나주를 합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전라도 전역에서 나주와 함께 가장 큰 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가 이 땅을 차지하여 ‘완산(完山)’이라고 불렀다가 통일 신라 시대에 현재와 같이 전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후삼국 시대에는 견훤이 이곳 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하기도 하였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우고 전국을 8도로 나누어 지역마다 감영을 세워 관찰사를 파견하였다. 이리하여 경기감영, 충청감영, 전라감영, 경상감영, 황해감영, 강원감영, 평안감영, 함..
백제의 왕릉군, 부여 능산리 고분군(부여 왕릉원) ▲ 능산리 고분군(부여 왕릉원) 전경 충청남도에 있는 부여는 백제의 도읍지가 있던 곳으로, 옛날에는 ‘사비’라고 불렸다. 본래 한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던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웅진(지금의 공주시)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다시 이곳 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이때가 538년으로, 백제는 660년에 멸망할 때까지 부여를 도읍으로 삼았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셈이다. 백제의 도읍지답게 오늘날까지 부여 곳곳에는 백제의 숨결과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능산리 고분군이다.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처럼 부여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도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15에 위치한 능산리 고분군은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202..
조선시대 청계천의 다리, 수표교 ​ ▲ 수표교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조선 시대에 청계천에 세워진 여러 다리 중 하나이다. 보통 난간이 있는 다리는 궁궐에서나 쓰이는데, 일반 백성들이 이용하는 다리에 돌로 된 난간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조선 말기의 사진을 보면 수표교에도 본래 난간이 없었으나 1890년대에 생겼다고 한다. ​ 수표교는 조선 전기에 한양 도성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하천인 청계천에 세운 여러 다리 중 하나이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청계천의 다리를 토교(土橋)나 목교(木橋)로 지었지만, 태종 때부터 돌다리로 바꾸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수표교도 태종 때부터 세종 때에 걸쳐 돌다리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청계천에 세워진 여러 다리 중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리는 수표교가 유일하다. 지난 ..
공주를 대표하는 산성, 공주 공산성 1. 백제의 산성, ​공주 공산성 ​▲ 공산성의 성곽길 | 공산성은 사적 제12호에 지정되어 있다. ​ ​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백제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이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웅진’이었기 때문이다. 웅진은 공주시의 옛 이름으로, 본래 백제의 도읍지는 오늘날 서울 지역인 한강 유역의 한성에 있었다. 이때를 가리켜 ‘한성 백제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인해 백제는 한성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오늘날의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때부터 다시 사비(오늘날의 부여)로 도읍지를 옮기기까지의 시기를 가리켜 ‘웅진 백제 시대’라고도 부른다. 웅진, 즉 오늘날의 공주는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도읍지였다. 공주에 남아 있는 여러 문화재 중에서도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의 대표적인 문화재,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 ▲ 송산리 고분군 전경 | 사적 제13호에 지정된 백제의 왕릉군이다.​ ​ ​ 1. 무령왕릉의 의의와 가치 무령왕릉은 백제의 제25대 왕인 무령왕과 그의 왕비의 무덤으로, 공주시에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면서 백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무덤이다. 이 무덤의 주인인 무령왕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무령왕(461~523)은 백제의 제25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501년부터 523년까지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무령왕릉은 삼국시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고대 왕릉 중에서 무덤이 주인이 아주 명확하게 밝혀진 유일한 무덤이다. 대부분의 고대 왕릉은 기록이나 여러 역사적 사실에 따라 무덤의 주인을 추정하는 데 비해, 무령왕릉은 실제로 무덤을 발굴하였고 그 과정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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