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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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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다리, 살곶이다리(전곶교) 1. '살곶이'라는 이름의 유래 ▲ 살곶이다리(전곶교) | 조선 시대의 다리로, 보물 제1738호에 지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살곶이다리’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보셨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한양대학교 바로 옆을 흐르는 중랑천에 있는 다리,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이 지점에 놓여 있는 다리가 바로 살곶이다리이다. 한자로는 '전곶교(箭串橋)'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도읍인 한양 도성에서 동쪽과 남쪽 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흥인지문이나 광희문 쪽으로 나와서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살곶이다리는 또한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다. 살곶이는 ‘살꽂이’가 바뀐 말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멀리서 바라본 살곶이다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물 아래..
'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집, 용흥궁 1. 잠저, 용이 살았던 집 ▲ 용흥궁 전경(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 용흥궁 현판 여러분은 혹시 ‘강화도령’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강화도령이란 왕위에 오르기 전 강화도에 살았던 도령, 즉 조선의 제25대 왕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조선의 역사에서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만큼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철종만큼 불행한 왕도 없을 것이다. 그는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올라, 비록 왕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왕권을 행사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비운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용흥궁은 철종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어 1849년 1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
근대 건축물, 이화여자대학교 파이퍼홀(본관) 1. 이화여대의 간략한 역사 ▲ 이화여자대학교 본관(파이퍼홀) | 등록문화재 제14호 대학교 캠퍼스 안의 근대 건축물을 찾아서, 이번에는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우선 이화여자대학교, 약칭 ‘이화여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명문 여자 대학교로 평가받는 이화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대학교이기도 하다. 이화여대의 역사는 조선 말기인 1886년에 미국의 북감리교 선교사이면서 해외여성선교회를 통해 조선으로 파견된 메리 스크랜튼(M. F. Scranton, 1832~1909) 여사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던 자택에서 한 여학생을 교육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듬해인 1887년에 고종 황제가 직접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함으..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관,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1. 연세대학교의 근대 건축물 ▲ 사진 가운데가 언더우드관, 왼쪽이 스팀슨관, 오른쪽이 아펜젤러관이다. 학교 안에 있는 근대 건축물을 찾아서! 지난번 고려대학교에 이어서 ​이번에는 고려대학교의 영원한 맞수이자 사학의 명문인 ‘신촌 독수리’ 연세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연세대학교 안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이 세 개 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백양로라는 일직선의 큰길을 따라 약 500미터를 쭉 걸어가면,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고풍스러운 3개의 건물이 ‘ㄷ’자로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3개의 건물 한가운데에는 동상도 하나 서 있다. 이 3개의 건물이 각각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언더우드관,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이다. ▲ 연세대학교 정문 오른쪽에 있는 연..
근대 건축물, 고려대학교 본관과 중앙도서관 ▲ 고려대학교 본관 | 사적 제285호이다. 1. 사적으로 지정된 본관과 중앙도서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교 캠퍼스 안에 국가 지정 문화재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러한 문화재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나 대한제국 시대, 또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인데, 먼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학의 명문 ‘안암골 호랑이’ 고려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려대학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학의 명문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연세대학교와 더불어 매년 실시하는 연고전, 또는 고연전은 양교 학생들의 자부심과 경쟁심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대학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흔히 서연고, SKY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학벌 서열화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학교 중 하나로 설립 초기인 보성전문대학 시절부터 우..
고종의 비 명성황후가 살았던, 명성황후 생가 1. 명성황후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 ▲ 명성황후 생가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46호) 현재 경기도 여주시 여주읍 명성로 71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는 이름 그대로 조선의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난 집이다. 명성황후는 영천군수를 지낸 민치록의 딸로 태어났는데, 이 집에서 8살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후 한양으로 올라가 지내다가 16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 집은 본래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1688년에 지어진 집이었다. 민유중은 그 유명한 인현왕후의 아버지이다. 다시 말해 명성황후는 인현왕후의 후손인 셈이다. 본래는 안채만 남아 있었는데, 1990년대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 등이 복원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
조선시대의 읍성, 홍성 홍주성 1. 충청도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옛 홍주 ▲ 홍주성 성벽 | 홍주성은 사적 제231호에 지정되어 있다. 홍성은 옛날부터 서해안과 맞닿아 있는 충청도 지방의 군사적 요지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다. 18세기 중반에 실학자인 이중환이 쓴 에는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내포란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백 리 떨어진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의 예산, 당진, 서산, 그리고 홍성에 해당하는데, 특히 홍성은 내포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특히 땅이 평평하고 기름지고 바다도 가까워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홍성은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였는데,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주류성’이 지금의 홍주성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려 시..
정약용이 태어나 묻힌, 다산 정약용 유적지 1.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다 ▲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 다산 정약용 유적지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는 정약용이 태어난 곳이자 현재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 이곳은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에 속했고 ‘마현’, 또는 ‘마재’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다. 그는 일찍부터 친척들의 영향을 받아 서학과 천주교에 눈을 떴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특별히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정조의 명을 받아 한강의 배다리를 설계하였고, 수원 화성의 성곽을 설계하면서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의 최신식 기구를 고안하기도 했다. 정조의 신임을 받아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도 항상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신하들, 특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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