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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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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성곽과 성문, 홍지문과 탕춘대성 ​▲ 홍지문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 산 4번지, 상명대학교 입구 근처에 있는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1719년(숙종 45년)에 세워졌다. 탕춘대성(湯春大城)은 한양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으로, 홍지문(弘智門)은 탕춘대성을 출입하기 위한 성문이다. ​ ​​▲ 안쪽에서 본 홍지문 ​ 탕춘대성이란 이름은, 홍지문 근처 세검정 동쪽 봉우리(현재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탕춘대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탕춘대(蕩春臺)는 연산군 때에 만든 건물로, 연산군은 이곳에서 자주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 한양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의 성곽 둘레는 약 4킬로미터이고, 홍지문은 우진각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문루를 갖춘 성문이다. 홍지문 옆에는 바로 옆으로 홍제천이 흐르는데 이 물이 빠져나갈 ..
국보 제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이 비석은 삼국 시대에 만든 것으로, 신라 제24대 왕인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에 이 지역을 둘러보고서 북한산에 세운 비석이다. 여기서 ‘순수(巡狩)’란 왕이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순수비는 왕이 살피며 돌아다닌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란 뜻이다. 신라의 진흥왕(재위 540~576년)은 6세기에 국가 체제를 정비하여 영토를 크게 넓히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왕이다. 진흥왕 때에 신라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를 완전히 병합하였고,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을 통한 중국과의 원활한 교류가 가능하도록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진흥왕은 크게 넓어진 영토를 직접 다니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진흥왕 순..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1층으로 들어서면 가장 안쪽에 거대한 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바로 국보 제86호인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회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13.5미터에 이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탑은 본래 개성시 개풍군 부소산에 있던 경천사라는 사찰 안에 세워진 탑이다. 이 탑은 1909년에 우리나라에 와 있던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라는 사람이 일본으로 불법적으로 반출했다가 비난이 일자 1918년에 다시 우리나라로 반환된 역사가 있다. ​​그 후 경복궁 안에 세워져 있다가 2005년에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탑에는 고려 말기인 충목왕 4년(1348년)에 만들었다는 글이 새겨져 ..
양녕대군 묘소와 사당, 지덕사(양녕대군 이제 묘역) ▶ 지덕사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1호 ​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서 국사봉 터널 쪽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잘 단장된 한옥 건물들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조선 제3대 왕 태종(이방원)의 첫째 아들이자 제4대 왕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 이제(1394~1462)의 묘소와 사당이 있는 지덕사이다. 정확한 문화재 명칭은 '양녕대군 이제 묘역'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에 지정되어 있다. 주소는 서울시 동작구 양녕로 167로, 지덕사 바로 앞에 있는 도로명의 이름이 양녕로인 까닭이 바로 이곳에 양녕대군의 묘소와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지덕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국사봉 터널이 있는데, 국사봉은 관악구 봉천동과 동작구 상도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79미터의 궁교산이란 작..
행주대첩의 역사적 현장, 행주산성 ▲ 권율 장군 동상 | 행주산성의 정문인 대첩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보인다. 사적 제56호에 지정되어 있는 행주산성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토성으로, 임진왜란 중 3대첩으로 꼽히는 행주대첩이 벌어진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거둔 가장 큰 승리로 평가받는 3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그리고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이다. ​ ​▲ 행주산성 정상에 있는 덕양정 | 한강과 인근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행주산성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방향 | 멀리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까지 보인다. 이곳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알 수 있다. ​ ​▲ 덕양정에서 바라본 한강 방면 ​ ​ 1593년 2월, 행주산성에 주둔해 있던 도원수 권율(1537~1599)이..
홍난파가 살았던 집, 홍파동 홍난파 가옥 ▲ 홍파동 홍난파 가옥 | 등록문화재 제90호 지하철 서대문역과 독립문역 사이의 서울시 종로구 홍파동에 있는 홍난파 가옥은 , , , 등의 노래를 작곡한 홍난파(1898~1941)가 말년을 보낸 작은 집이다. ​ 이 집은 1930년에 독일계 선교사가 지은 서양식 벽돌 건물로 홍난파가 인수하여 살던 곳이다. 당시 서양식 주택의 특징이 드러나 있는 등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90호에 지정되어 있다. 주택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가까운 곳에 독일 영사관이 있어서 부근에 독일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다 없어지고 이 집만 남아 있다. ​내부에는 홍난파 선생에 관련된 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홍난파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보였던..
대한제국 최고의 의료 기관, 대한의원 ▲ 대한의원 본관 (사적 제248호) | 대한제국의 최고 의료기관이자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의 전신이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안에는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은, 붉은 벽돌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근대 서양식 건물 하나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인접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의학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대한제국 최고의 국립 의료 기관이었던 ‘대한의원’의 본관 건물이다. 일찍이 이 일대는 창경궁의 후원이었던 함춘원이 있던 자리이다. 함춘원은 현재의 위치인 창경궁의 동쪽에 있었는데 정조 때에는 이곳을 정비하여 경모궁으로 불렀다. (사적 제237호 경모궁지) 대한의원은 1907년에 ..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여 만든, 강화산성 ▲ 강화산성 남문 | 강화산성 내성의 남쪽 문이며, 조선 시대 숙종 37년(1711년)에 지어졌다. 앞쪽에는 ‘강화남문’, 뒤쪽에는 ‘안파루’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 강화산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132호에 지정되어 있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고려 시대인 1232년(고종 19년), 무신 정권의 실권을 쥐고 있던 최우(최충헌의 아들)는 몽골의 침입을 맞아 개경에 있던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골에 끝까지 저항하고자 하였다. 육지에서는 천하무적이지만 수전(水戰)에 약한 몽골군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이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어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무려 39년 동안이나 몽골에 항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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