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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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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이 체결된 곳, 덕수궁 중명전 ▲ 덕수궁 중명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에 지정되었다가, 사적 제124호인 덕수궁에 포함되었다. ​ 현재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덕수궁 뒤쪽 돌담길과 예원학교 사이에 있는 중명전은 본래 덕수궁(당시 이름은 경운궁) 경내에 있던 건물이었다. 조선 말기인 대한제국 시대에 이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과 여러 외국의 외교관들이 주로 머물던 곳으로, 중명전 바로 뒤쪽에는 구 러시아 공사관 건물이 남아 있기도 하다. 중명전은 1897년에 덕수궁(경운궁)을 확장할 때 대한제국의 황실 도서관으로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2층의 벽돌집이며 덕수궁 정관헌과 독립문을 설계했던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하였다. 1904년에 덕수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자 고종의 집무실이자 외국 사..
대한제국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영휘원과 숭인원 ▲ 영휘원 ​ ​▲ 숭인원 ​ 1. 홍릉 수목원 근처에 있는 왕실의 무덤 ​ 서울시 동대문구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과 1호선 청량리역 부근에는 ‘홍릉’이라는 지명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제20대 왕 경종의 능)를 소개할 때에 이미 설명하였듯이, 이 일대는 천장산(天藏山)의 줄기가 이어진 곳으로 본래 명성황후(1851~1895)의 무덤인 홍릉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홍릉 수목원 자리이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1897년) 때에 경복궁 건청궁에서 시해되었는데, 처음에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은 지금의 홍릉 수목원(홍릉숲) 자리에 만들어졌다. 그 후 남편인 고종은 1919년 1월 21일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종의 무덤은 현재의 홍릉(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순종 황제의..
고려 시대의 거대한 불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보물 제93호이다. ​ 보물 제93호에 지정되어 있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있는 거대한 2개의 불상이다. ‘용미리 쌍미륵 석불’, 또는 ‘용미리 석불입상’이라고도 한다. 이 불상은 장지산(長芝山) 기슭에 있는 용암사라는 사찰 안에 있다. 이름에 있는 ‘마애(磨崖)’라는 말은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바위에 새긴 2명의 서 있는 부처 조각이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의 조각으로 알려져 있는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17미터 정도이며, 아주 큰 자연 암벽에 새긴 불상이다. 불상의 머리 위에 돌로 만든 갓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 암벽 뒤에서 본 불상 | 자연 암벽에 몸통 부분을 새기고 그 위에 머리 부분을..
대한제국 시대의 비석, 장충단비 ​▲ 장충단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장충단 공원 안에 있다. ​ 서울시 중구 장충동,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근처에는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명소가 많이 모여 있다.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불리는 ‘태극당’,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경기장인 장충체육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동국대학교, 그리고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며 저마다 원조를 주장하는 족발집이 모여 있는 장충동 족발 골목 등. 그 장충동,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장충단 공원이 있다. 이 동네의 이름이 장충동인 까닭은 바로 장충단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 장충단(奬忠壇)은 을미사변 때에 경복궁에서 일본인들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충신과 열사들을 위해 세운 제단이다. ​ ▲ 장..
조선 시대의 관청,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 ▲ 종친부 옥첩당 ​ ▲ 종친부 옥첩당 ​ ▲ 종친부 경근당 ​ ▲ 종친부 경근당 ​ 조선 시대에는 오늘날의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주변에 많은 관청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현재 경복궁 동쪽에 있는 북촌 한옥마을 주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경내에 있는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도 역시 조선 시대의 관청 건물이다. 여기서 ‘종친부(宗親府)’는 종친에 관한 일을 맡아 처리하던 관아였다. ‘종친(宗親)’이란 쉽게 말해 왕의 친척을 뜻한다. 종친부는 왕실의 친척에 관한 여러 가지 일, 예를 들어 역대 제왕의 계보와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는 등의 일을 맡았던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는 ‘재내제군소’라고 부르다가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었고, 세종 12년인 1430년에 종친부라는 이름..
서울 아차산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아차산성 ▲ 아차산성(사적 제234호)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어 두 도시의 경계를 이루는 아차산에는 삼국 시대에 쌓은 성곽인 아차산성이 있다. 아차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북한산, 도봉산 일대가 훤히 보일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한강과 한강 남쪽의 몽촌토성, 풍납토성(백제의 도읍이었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와 같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한강 유역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백제, 고구려, 신라는 이곳 아차산성을 두고 치열한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적 제234호인 아차산성은 둘레가 약 1,000미터에 이르는 산성으로, 아차산 정상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방향에 치우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에 따르면, 서기 286년 고구려를 대비하기 위해 성을 수리하였다는 기록..
누에신(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서울 선잠단지 ▲ 서울 선잠단지 | 사적 제83호에 지정되어 있다. 선잠단지는 누에치기와 관련이 있다. 비단은 명주실로 만들고, 명주실을 얻으려면 누에치기와 뽕나무 재배가 필수적이다. 누에는 명주실을 토해내는 벌레인데 뽕잎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누에치기를 한자어로는 ‘양잠(養蠶)’이라고 한다. 사적 제83호에 지정되어 있는 서울 선잠단지는 조선 시대에 역대 왕비가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해 잠신(蠶神, 누에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중국의 고대 전설에 전해오는, 인간에게 처음으로 누에치기를 가르쳐 주었다는 잠신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고, 단의 앞에는 뽕나무를 심어서 궁중의 잠실(蠶室: 누에치기를 하는 방)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이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식을 선잠제(先蠶祭)라고 한다. ▲ ..
인조반정 때 칼을 씻었다는, 세검정 ​ ▲ 세검정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에 있는 상명대학교 입구인 세검정 삼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서울에서는 아주 유명한 '세검정'이라는 정자 하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세검정은 홍제천 바로 옆에 세워진 정자이다. 세검정 삼거리를 가운데에 두고 왼쪽으로는 홍지문과 탕춘대성이 있고 오른쪽에는 세검정이 있는데, 두 곳의 거리는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이다. 한양 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일명 자하문)에서 가까운 이 동네는 북악산과 삼각산(북한산) 사이에 있으며 아주 옛날부터 계곡이 있어 시원하고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 이 때문에 문학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정약용이 지은 이란 시가 대표적이다. ‘세검정에서 노닐다’라는 뜻의 이 시는 정약용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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