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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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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1902년에 세운 비석으로, 사적 제171호이다. ​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동상의 오른쪽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는 작지만 평범해 보이지 않는 비각이 하나 있다. 광화문 네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비각 안에는 비석이 하나 보관되어 있다. 이 비석은 조선의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된 것을 기념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 고종은 1863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이 비석이 세우진 것은 1902년(광무 6년)이다. 이 해는..
조선 왕실의 후원이 있던 곳, 서울 경모궁지(함춘원지) ▲ 서울 경모궁지 | 함춘원과 경모궁이 있던 터로, 현재는 함춘문과 석단만 남아 있다. ​ 서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조선 시대의 궁궐 중 특이하게도 동쪽을 향해 지어져 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연건동) 자리에는 본래 조선 시대의 왕실 정원인 함춘원(含春苑)이 있었다. 제9대 임금 성종 때 만들어진 함춘원(含春苑)은 창경궁에 딸린 후원이었는데, 영조 40년(1764년)에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훗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함춘원에 있는 사도세자의 사당을 ‘경모궁(景慕宮)’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고,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존하였다. ​ 다시 말해 이곳은 창경궁의 부속 정원인 함춘원이 있던 자리..
삼국 시대의 산성, 하남 이성산성 ▲ 이성산성 동문지 | 이성산성은 사적 제422호에 지정되어 있다. ​ ▲ 남문지 근처의 석축 서울시 강동구와 송파구에 맞닿아 있는 경기도 하남시 한가운데에는 춘궁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이곳에 이성산(二聖山)이라는 해발 208미터의 작은 산이 있다. 이성산이라는 이름은 백제의 두 왕자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전설과 관련이 있는지 이 산에는 삼국 시대의 산성인 이성산성이 있다. 경기도 하남시는 오랫동안 역사학계의 수수께끼였던 “백제의 첫 번째 도읍이자 왕성인 ‘위례성’은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유력한 후보지로 지목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약용은 에서 한강에 인접한 땅의 남북 즉, 광주고읍..
강릉시를 대표하는 전통 가옥, 강릉 선교장 ​▲ 선교장 전경 |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5호로 지정되었다. ​ ​▲ 솟을대문 ​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고택인 선교장은 본래 전주 사람인 이내번(李乃蕃)이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이다. 이내번은 효령대군의 11대손으로 18세기 초인 1703년에 이곳에 집을 지어 이주하였다고 한다. 즉, 선교장은 지어진 지 300년이 넘은 저택이다. 선교장은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민가 주택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경포호가 있어 지나다닐 때 배다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마을의 옛 이름이 ‘배다리마을(선교리)’이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부엌​ 선교장 안에는 야트막한 산기슭을 뒤로 하여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등 조선 시대 ..
조선 시대 지방 교육기관, 하남 광주향교 1. 향교와 서원 ▲ 광주향교 외삼문 향교는 조선 시대에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 시대의 향교는 각 지방 관아의 관할 아래에 있으면서 유학 교육을 실시하던 곳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따라서 향교는 각 지방에 세워진 공립 중고등학교라고 볼 수 있다. 향교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교육기관으로 서원이 있는데, 서원은 사립 교육기관이다. 오늘날로 치면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다. 향교는 유교 이념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려 시대에 처음 생겼으나, 당시에는 크게 성행하지 못하고 유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전국의 각 주, 부, 군, 현에 각각 1개씩 향교가 생겼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 공립 학교, 수원향교 ▲ 수원향교 홍살문 | 수원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호이다. 향교(鄕校)는 조선 시대에 지방에 설치된 공립 학교로, 서울(한양)의 성균관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유학 교육과 제사 등의 역할을 맡았다. 또한 향교는 지방 관청의 관할 아래에 있어 지방민을 교화시키는 기능까지 맡았다. ​ 현재 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있는 수원향교는 처음에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조 13년인 1789년,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이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화산으로 옮겨지고 수원 화성이 건설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팔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수원 화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원향교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795년에는 이곳 수원향교에 정조가 친히 행차하기도 했다. ​ ​▲ 외삼문 |..
조선 시대의 공립 학교, 전주향교 ​▲ 전주향교의 입구인 만화루 | 전주향교는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45-20(교동)에 있으며, 사적 제379호이다. 만화루는 전주향교의 정문에 해당하는 누각 건물이다. ​ 조선 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은 성균관이었다. 오늘날의 국립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의 하부 조직으로 서울에는 네 개의 학교 즉, 사학(四學, 사부학당)이 세워졌고, 각 지방에는 향교가 세워졌다. ​ ​항교는 각 지방에 세운 공립 학교로, 유학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의 공립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며, 옛날에는 서당을 졸업하면 지방의 학생들은 향교에 입학하고, 서울의 학생들은 사학에 입학하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향교는 지방의 수령과 관찰사가 직접 관리하였는데, 그만큼 국가적으로 향교와 유학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였..
대한제국 시대의 건축물, 구 벨기에 영사관 ▲ 구(舊) 벨기에 영사관 | 사적 제254호로,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남현동)에 있다.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지나는 사당역에서 남부순환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큰길가에 서양식의 고풍스러운 2층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붉은색 건물은 대한제국 시대인 1905년에 벨기에 영사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사적 제254호에 지정되어 있다. ​ 1901년에 대한제국과 벨기에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세운 구 벨기에 영사관은 190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05년(광무 9년)에 완성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일본인 건축가 고다마(小玉)가 맡았다. 건물이 처음 세워진 위치는 서울시 중구 회현동 2가로, 현재 우리은행 본점 사옥이 있는 곳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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