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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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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의 치욕을 간직한, 남한산성 ▲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 ▲ 숭렬전 | 남한산성에 있는 사당으로,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경기도 광주시와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에는 조선 시대에 도읍인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산성이 있다. 바로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한산성이다. 본래 남한산성이 있는 이곳 남한산에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만든 성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 문무왕 때에 만든 한산주에 주장성(晝長城)이라는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주장성이 바로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 시대의 기록은 없고, 에는 일장산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즉, 남한산성은 이러한 과거의 여러 성의 터를 바탕으로 조선 인조 때에 본격적으로 쌓은 산성이다. ​ ​ ▲ 남한산성 행궁 | 행..
조선의 왕릉, 의릉(懿陵) ▲ 의릉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은 조선의 제20대 임금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를 모신 왕릉이다. 사적 제204호에 지정되어 있다. 경종은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숙종의 계비 희빈 장씨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인 숙종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병약하고 자손이 없어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721년에 이복동생인 연잉군(훗날 제21대 임금 영조)을 세제(世弟)로 봉하였고 즉위 4년 만인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 어씨(1705~1730)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로, 숙종 44년인 1718년에 세자빈이 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며 자손이 없이 26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의릉이 있는 이 일대, 즉 천장산 줄기가 뻗..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 흥인지문(동대문) ▲ 낙산 쪽에서 바라본 흥인지문(동대문) 오늘날 많은 쇼핑타운이 모여 있어 밤늦게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동대문 시장에는 동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이 있다. 흥인지문은 대한민국 보물 제1호에 지정된 조선 시대의 성문이다. 한양 도성의 동쪽 대문으로 지어진 흥인지문은 태조 5년인 1396년에 한양 도성을 쌓으면서 처음 지어졌다. 그 후 단종 1년인 1452년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말기인 1896년(고종 6년)에 이르러 전반적으로 개축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현재의 흥인지문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다.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는 이름에 ‘인(仁)’자가 들어가는 것은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따른 것이다. 유학에서는 변하..
연산군 묘와 정의공주 묘 ▲ 연산군 묘 | 왼쪽이 연산군의 묘, 오른쪽이 부인 신씨의 묘이다. ​ ​▲ 연산군 묘 | 곡장 뒤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오른쪽이 연산군의 묘이다. ​▲ 묘역 전경 | 가장 위쪽에 있는 것이 연산군 부부의 묘이다. ​ 연산군 묘는 조선의 제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과 부인 신씨 등이 안장된 묘역이다. 사적 제362호에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해 있다. 연산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연산군의 재위 기간은 1495년부터 1506년까지 약 11년인데, 조선 왕조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군’의 칭호를 받은 두 명의 임금 중 하나이다. 1506년에 일어난 중종반정(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이 왕위에 오..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 ▲ 정릉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아리랑로19길 116)에 위치한 정릉(貞陵)은 조선 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 왕후 강씨의 무덤으로 사적 제288호에 지정되어 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선정릉에 있는 정릉(靖陵)은 이름이 같지만 11대 임금 중종의 무덤이다.) 조선을 개국하기 전,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풍습에 따라 향처와 경처를 각각 두었다. 향처는 고향의 부인이란 뜻으로 함흥에 있는 신의왕후 한씨였고, 경처는 당시 고려의 수도인 개경의 부인으로 바로 신덕왕후 강씨가 이성계의 경처였다. 신덕왕후 강씨는 고려말 황해도 지방의 권문세가였던 강윤성의 딸로, 쉽게 말해 강씨의 가문은 고려 말의 권문세가였다. 자연히 신덕왕후의 든든한 집안은 남편인 이성계가 중앙의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 영..
조선의 왕릉, 선정릉(선릉과 정릉) ▲ 선릉의 정자각 서울시 강남구에는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고층빌딩이 많기로 소문난 ‘테헤란로’라는 대로가 하나 있다. 이 대로의 원래 이름은 근처의 선정릉에 3개의 왕릉이 있다고 하여 ‘삼릉로(三陵路)’였다. 그러다가 1977년에 이란의 테헤란 시장이 서울시를 방문하게 되었고 서울시와 테헤란시의 우의를 다짐하기 위해 서울에는 테헤란로, 테헤란에는 서울로라는 이름의 도로명이 만들어졌다. 이때 삼릉로라는 이름이 오늘날처럼 테헤란로가 된 것이다. 강남구를 남북으로 크게 가로지르며 뻗어 있는 이 테헤란로 가운데 지하철 선릉역 부근에 있는 선릉과 정릉은 마치 빌딩 숲속에 둘러싸인 녹색의 정원처럼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선릉과 정릉, 합쳐서 흔히 선정릉이라고 부르는 조선의 왕릉은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 내려서..
세종대왕의 무덤, 영릉(세종대왕릉) ▲ 영릉 | 조선 왕릉 최초의 합장릉으로 봉분(능침)이 하나이고, 앞에 혼유석은 두 개이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위치한 영릉(英陵)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꼽히는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과 그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이다. 사적 제195호에 지정되어 있다. ​​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 근처에는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영릉(寧陵)이 있는데, 이 능은 북벌을 추진하였던 제17대 임금 효종과 그의 비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두 왕릉은 불과 약 700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래서 흔히 이 두 왕릉을 합쳐서 ‘영녕릉(英寧陵)’이라고 부르고 여주에서 영녕릉을 찾으면 두 왕릉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영릉이라는 이름의 왕릉이 하나 더 있다. 영조의 큰아들인 효장세자의 무덤도 영릉(永陵)인..
조선의 마지막 왕릉이자 최초의 황제릉, 홍릉과 유릉(홍유릉) ▲ 홍릉 ▲ 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유릉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과 그의 비인 명성황후의 무덤인 홍릉, 그리고 제27대 왕인 순종과 순명효황후, 계비 순정효황후의 무덤인 유릉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홍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릉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황제릉이다. ▲ 홍유릉 안내도 홍유릉은 다른 조선의 왕릉과 그 형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이전의 ‘왕릉’과는 다른 ‘황제릉’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의 석물 배치와 구조는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고종 바로 이전의 왕인 철종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상황이나 왕의 의지에 따라 무덤의 조성 양식은 조금씩 바뀌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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