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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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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을 지킨 충신의 묘, 사육신 묘 ​▲ 의절사 |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 각종 공무원 시험 학원과 고시 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에 대한 충절을 죽음으로써 지킨 사육신의 묘가 있다. 사육신 묘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잘 알려져 있듯이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은 세조 2년인 1456년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여섯 신하를 가리킨다. ​ ​오늘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린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숙부(수양대군,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다시 본래의 임금을 세우고자 한 사육신을 ‘충신’의 대명사로 여기며 추앙하는 ..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 석비, 충주 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 ▲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 ▲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내부 ▲ 충주 고구려비 앞면 ​ ​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 마을에 있는 충주 고구려비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의 돌비석으로, 국보 제205호에 지정되어 있다. 충주 고구려비는 오랫동안 ‘중원 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에 아직도 이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이 비석은 5세기 무렵 고구려 장수왕과 남진 정책과 당시 삼국의 관계, 세력 범위 등을 밝혀 주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적극적인 남진 정책으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였던 고구려의 세력 범위가 충주 지역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 ▲ 충..
조선 시대 서울의 아침과 저녁을 알리던, 보신각 ▲ 조선 말기의 보신각 ▲ 오늘날의 보신각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에 위치한 보신각은 본래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한가운데에 있던 종을 달아 두던 전각이다. 이 일대에 남아 있는 종각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 보신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종로(鐘路)’라는 이 일대의 지명도 종각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직후인 1398년에 처음으로 한양 도성 안에 종을 매달아 두는 종루가 현재의 인사동 입구인 청운교 부근에 생겼다. 당시 종루는 2층의 누각 건물이었는데, 인정과 파루에 각각 종을 울려서 도성의 문을 닫고 열었다. ​지금으로 치면 저녁 10시 무렵인 인정(人定)에는 28번을 종을 울리고, 새벽 4시 무렵인 파루(罷漏)에는 33번을 종을 울려서 시각을 알렸던 것이다. 인정과 ..
백제의 왕성으로 여겨지는, 풍납토성 ▲ 풍납토성 | 지하철 천호역 10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긴 언덕 같은 성벽이 보인다.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일대에 있는 풍납토성은 말 그대로 흙을 다져서 쌓은 성곽으로, 한강 유역에 있는 백제 초기의 성곽이다. 백제의 유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토성으로, 사적 제11호에 지정되어 있다. 평지에 흙을 다져 쌓은 성벽은 그 전체 길이가 본래 4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25년에 일어난 대홍수 때문에 서쪽 성벽이 없어져서 현재는 2.2킬로미터 정도가 남아 있다. 성벽은 한강변까지 뻗어 있고 나머지 방향으로도 성벽이 일부 끊기면서도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약 6~11미터로 평지에 지은 성벽으로는 엄청나게 높은 편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토성이 아니라 야트막한..
고려 시대의 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1호) ​ ​ 국보 제48-1호에 지정되어 있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기슭에 있는 월정사라는 절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오대산은 설악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간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예로부터 불교의 성지로 꼽혀왔고 특히 문수보살이 거처하는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오대산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으로 유명한데 특히 월정사에서 상원사와 적멸보궁으로 이어진 계곡에는 수백 년 된 전나무와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월정사는 오대산 입구에 있는 절로, 에 따르면 신라의 고승인 자장(590년경~658년경)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이곳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고 여겨서 월정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때가 신라 선..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를 만든, 흥덕사지 ▲ 청주 흥덕사지(사적 제315호) 충청북도 청주시에 남아 있는 흥덕사지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로, 사적 제315호에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를 찍은 곳이다. 1985년에 흥덕사 터를 발굴할 당시에 건물터와 주춧돌만 남아 있던 이곳에서 ‘흥덕사’라고 새겨진 쇠북(금구) 조각이 출토되어서 절의 이름이 흥덕사였음이 밝혀졌다. ▲ 직지심체요절(=직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흔히 직지라고 부르는 이 책은 불교 서적으로 고려 시대인 1377년에 이곳 흥덕사에서 인쇄되었는데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보다 약 70여 년이나 앞선 것으로,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인..
청주시의 국보, 용두사지철당간 ▲ 용두사지철당간(국보 제41호)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우뚝 솟아 있는 용두사지철당간(淸州龍頭寺址鐵幢竿)은 국보 제41호에 지정되어 있는 고려 시대의 당간이다. 당간은 절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를 달아 두는 기다란 장대를 뜻한다. ‘용두사지’란 용두사라는 절이 있던 터라는 뜻이다. 당간은 보통 10미터 이상으로 만드는데 절의 입구에 세워 법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 ‘당(幢)’이라는 깃발을 걸어 두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절의 입구에 세워서 이곳에 절이 있음을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절이 세워지고 당간도 많이 설치되었지만 대부분 돌로 만든 당간지주(支柱: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우는 긴 돌)만 남아 있고 당간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 당간은 쇠나 나..
삼국 시대의 무덤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 ▲ 방이동 제1호분 고분 한강의 남쪽, 서울시의 남동쪽에 있는 송파구는 옛날에 송파나루가 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 송파나루는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온갖 물품이 한강을 건너기 전에 모이는 중요한 곳이었다. 이 일대에 푸른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 있어서 ‘송파(松坡)’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광주에 속하였는데, 지금의 잠실과 신천 일대에는 ‘부리도’ 또는 ‘하중도’라고 불린 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실 지역을 개발하면서 물길을 막고 이곳을 매립하여 주변에 대규모 주택단지와 석촌호수가 생겼다. 석촌호수 주변에는 옛날에는 삼전도라는 나루가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청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아무튼 이 일대는 과거 옛 백제의 도읍지였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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